우리는 세계를 잘 모른다. 아니 관심이 부재하다. 그러니 세상을 큰 틀에서 바라보는 안목이 부족할 수밖에 없다. 좁은 한반도에 갇혀 사고하는 습관으로 길들여진 지 오래다. 그나마 우리 역사에 대해서도 관심이 줄어들면서 세계뿐 아니라 우리 자신조차 제대로 바라보지 못한다. 이는 역사를 모르는 개인 혹은 민족의 슬픔이자 비극이다.
지금은 글로벌 시대다. 어느 국가도 홀로 떨어져 생존하기 어렵다. 서로 얽히고설켜 있기에 세계에 대해 잘 알 필요가 있다. 이런 의미에서 우리는 세계사를 공부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세계를 제대로 이해할 때 그 세계 속에서 우리를 지켜내고 원하는 바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라고 언제까지 한반도에만 갇혀 지낼 수 있는가?
우리라고 스페인, 영국처럼 한때 세계를 호령했던 강대국의 반열에 오르지 말라는 법은 없다. 이런 생각에 이르면 이들 강대국들이 어떻게 최강의 자리에 올랐고 또 어떻게 추락했는지 궁금하게 된다. 문명탐험가인 저자 송동훈의 이 책이 그런 호기심을 충족시키는 데 큰 도움이 될 것 같다.
이 책을 읽고 내린 결론은 강대국의 조건은 무엇보다 좋은 리더의 존재이다. 이 책을 통해 그것이 여실히 드러난다. 스페인이 강대국이 되었을 때는 합스부르크 왕가 출신의 펠리페 2세(1527년 5월 21일~1598년 9월 13일)라는 탁월한 왕이 있었다. 그는 로마 가톨릭을 통한 국가 통합을 이상으로 로마 가톨릭의 맹주를 자처하며 이를 추구했다. ‘서류왕’이라는 별명이 붙을 만큼 열정적으로 일했다. 레판토 해전에서 오스만 제국과의 해전에서 승리하고, 포르투갈 왕국을 병합했다. 메리 1세의 배우자로서, 잉글랜드의 공동 통치 국왕이기도 했다. 스페인 제국은 유럽을 포함해 서쪽으로는 아메리카 대륙을 가로질러 태평양 연안에 이르렀고, 동쪽으로는 필리핀에 닿았다.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해가 지지 않는 제국’을 건설한 것이다.
그러나 펠리페 2세 사후 서서히 몰락하기 시작하면서 그 영광은 그리 오래 가지 못했다. 물론 그 전조는 이미 펠리페 2세 후반에 있었다. 1588년, 스코틀랜드의 메리 여왕의 사망 등을 계기로 네덜란드 북부의 반란세력을 지원하고 있던 잉글랜드 왕국을 정벌하기 위해 무적함대를 파병하였으나 칼레 해전에서 대패했다. 특히나 종교라는 이름으로 사회의 신뢰와 관용은 파괴되었다. 역사적으로 보면 타종교에 인색했던 국가나 통치자 치고 성공적인 경우는 드물다. 펠리페 2세의 말년이 그랬다.
조선이라는 나라도 펠리페 2세 말기의 경직된 사회였던 것 같다. 성리학이라는 하나의 도그마 속에 조선사회를 가두고, 그 속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나면 이단으로 치부하고 사문난적으로 낙인찍혔다. 한 마디로 왕따 당하기 싫으면 새로운 생각은 하면 안 되는 고인 사회가 된 것이다.
스페인에서 더 큰 문제는 경제적인 것에 있다. 중산층의 몰락이었다. 상업과 노동은 천대되었고, 사람들은 손쉬운 투자에만 열을 올렸다. 새로운 세계에 대한 모험이 사라지고, 전통적 귀족의 직위와 사회적으로 대접받는 자리에 집착하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어렵게 땀 흘려 벌기보다 손쉽게 남의 것을 빼앗는 데 탐닉했다. 이러고도 망하지 않으면 그게 더 이상한 것이다. 이 대목에서 헬조선이라고 불리는 우리나라가 떠오르는 것은 왜일까?.
스페인의 빈자리를 치고 들어온 것이 17세기 초 영국이다. 한낱 섬나라에 불과했던 영국이 어떻게 해가 지지 않는 나라가 되었는지 궁금하다. 역시 엘리자베스 1세(1533년 9월 7일~1603년 3월 24일)라는 걸출한 통치자가 있었다. 스페인의 모습과 영국의 모습은 정반대였다. 스페인의 무적함대를 격퇴한 영국은 자유와 활력이 넘쳤다. 동시에 문화 또한 융성했다. 대문호 셰익스피어가 이 시기 등장한 것은 우연이 아니었던 것이다. 드레이크의 항해를 통해 알 수 있듯이, 영국은 과거 스페인이 그랬던 것처럼 세계에 대한 호기심을 버리지 않고 세계로 세계로 나아갔다. 그리고 엘리자베스 1세는 이를 재정적으로 뒷받침해주었다.
여기서 궁금해진다. 우리는 잉글랜드의 길을 걷고 있을까? 아니면 스페인의 길을 가고 있을까? 우물 안 개구리 식의 편협한 사고, 경직되고 권위적인 사회 분위기, 중산층의 몰락, 도전 정신의 부재 등, 현재의 모습만 보자면 스페인의 펠리페 2세 말기나 펠리페 3세 치세 기간에 가깝지 않을까? 물론 아직 기회는 남아 있다고 생각한다. 영국도 엘리자베스 1세가 아니라 메리 여왕이 계속 통치했다면, 섬나라 수준을 벗어나지 못했을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선거에서 어떤 리더를 선택하느냐가 중요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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