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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계발

땡전 한 푼 없이 떠난 세계여행

by 수다스러운 햇빛 2023. 4. 16.

 매주 월요일마다 교보, 예스24, 알라딘 등의 인터넷 서점을 돌아다닌다. 오프라인 서점은 너무 멀어 인터넷 서점만 방문한다. 만약 월요일에 못하면 어떻게든 그 주에 한 번은 꼭 인터넷 서점에 들른다. 이 책 저 책 기웃거리다 우연히 눈에 띈 게 미하엘 비게의 '땡전 한 푼 없이 떠난 세계여행'이다. 국내 무전 여행하는 사람은 간혹 있지만, 세계여행을 돈 없이 했다는 데 호기심이 생겼고 그 방법을 한번 확인하고 싶었다. 감동까지 덤으로 챙길 수 있다면 좋겠지만 처음부터 그건 크게 기대하지 않았다. 책을 신청했고 책을 받자마자 저자의 비법을 빨리 알고 싶어 방바닥에 편하게 누워 금세 다 읽었다.

 

문득 자신의 지나온 삶에 의문을 던지는 때가 있다. 의식적인 의문이 아니라 생각도 하지 않았는데 갑자기 어떤 영감이 떠오를 때처럼 순간적으로 번뜩 일어나는 자신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 저자 미하엘 비게는 베를린에 사는 36살의 프리랜서 방송 리포터이다. 흥미롭고 독특한 콘셉트의 다큐멘터리로 여러 차례 방송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그도 20095월 어느 날 문득 그의 삶에 의문을 던졌다. 그의 표현대로 닭이 되어 있는 그의 모습을 그날 처음 본 것이었다. 그러나 동화 '미운오리새끼'에서 오리가 오리가 아닌 백조였듯이 그도 처음부터 닭이 아니었다. 그는 원래 매로 태어났다. 3킬로미터 밖에서 뛰어다니는 토끼와 들쥐를 보고 그들을 전광석화처럼 날아서 낚아챌 수 있는 매로 태어난 것이다. 그러나 스스로 알지 못하는 사이 닭으로 변해 가고 있었다. 결국 30센티미터 앞의 모이에 혈안이 된 닭으로 변해 버리고 말았다. 이제 그는 다시 매로 태어나기로 결심했다. 매가 되기 위해 그 동안 자신을 끊임없이 구속하고 옭아매는 '''시간'에 제대로 한번 맞짱을 뜨기로 했다. 세계 금융위기가 한창인 때라 아마도 더 힘들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이렇게 2009621일 그의 무모한 세계여행이 시작되었다. 이 여행에서 그는 150일 동안 35,000킬로미터에 이르는 길을 따라 4개 대륙, 10개 나라 이상을 땡전 한 푼 없이 여행하고 결국 세상의 끝 남극까지 밟았다. 이 여행에서 저자가 얻은 것은 좁고 닫힌 닭의 마음에서 크고 열린 자세의 매의 마음이다. 그리고 인생이란 여행에서 필요한 두 가지 소중한 규칙도 보너스로 얻었다.

 

첫째, 그 문제들에 적극적으로 대응하되 반드시 사람을 통해 해결하기, 또 가급적 민폐를 끼치지 않기 위해 노력하기

 

둘째, 인생의 무게를 너무 무겁지 않게 하기, 또 돈을 벌기 위해 노력하되 돈에 의해 나의 인생 방향과 행복이 좌지우지되지 않도록 하기이다.

 

나는 이 여행에서 무엇을 얻었을까?

세상이 많이 바뀌긴 한 모양이다. 지도만 하나 달랑 들고 가는 것이 아니라, 넷북, 비디오 카메라(2), MP3 등의 첨단 IT기기와 이메일과 메신저 등의 인터넷 기술로 무장한 40kg 배낭 하나 메고 저자는 여행을 떠났다. 무전여행이 아니었다면 아마 아이폰도 추가되었을 것이다. 낯익은 사람과 정보의 부재로 생기는 두려움과 설렘이 여행의 모습이었는데, 이들 첨단기기를 항상 들고 다니니 사람도 정보도 옆에 있는 듯 느껴져 여행의 긴장감이 조금은 퇴색되는 듯도 하지만 낯선 사람을 만나 그들과 공감하는 과정이 여행의 참모습임은 변하지 않았다. 저자도 낮선 사람들로부터 도움을 받지 못했다면 이 여행은 성공하지 못했을 것이다. 땡전 한 푼 없이 세상 끝까지 여행하는 리포터라고 자기소개를 한 다음 혹시 공짜 티켓을, 공짜 음식을, 공짜 잠자리를 제공해 줄 수 있느냐고 물었을 때, 저자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했다면 머리털 나고 처음 보는 낯선 사람에게 어느 누구도 단돈 1센트의 도움조차 주려고 하지 않았을 것이다.

 

인터넷에는 정보가 늘려 있다. 그래도 사람과 부대끼며 새롭게 알게 되는 것이 아직도 참 많다. 나도 저자로부터 새로운 사실을 많이 알게 되었다. 덤스터 다이빙(쓰레기를 뒤져 음식구하기), 프리거니즘(음식물 쓰레기에서 얻은 채소 따위의 음식을 먹는 등의 방식으로 소비 지향 자본주의, 물질만능주의, 세계화에 반대하고 환경정의를 실천하는 운동), 프리건족(프리거니즘을 실천하는 사람들), 카우치서핑 사이트(여행자에게 무료로 숙소를 제공해주는 사이트), 현대기술문명을 거부하고 소박한 농경생활을 하며 사는 아미시 마을, 꽃잎을 먹고 사는 브랜든 등등. 그런데 아직 이해가 안 되는 것이 하나 있다. 저자는 라스베이가스에서 호텔이 널려 있는 까닭에 그리 어렵지 않게 공짜 숙소를 얻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는데, 단순히 값싼 음식을 얻거나 차표를 얻는 정도가 아닌 호텔 같은 비싼 곳에서 공짜로 잘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할 수 있을까?

 

라스베이가스에서 토드 모터 모텔에서 광고비디오를 찍어 주고 숙식을 해결하기도 했고, 로드웨이 인 호텔에서 매니저를 인터뷰 해 주고 숙식을 얻기는 했지만, 과연 이런 대가를 지불할 처지가 아니었다면 그곳에서 아무리 빈 방이 있었더라도 공짜 숙식을 제공해 줬을까 싶다. 내가 한남동의 힐튼 호텔로 찾아가 무전여행 중이니 하룻밤 재워 달라고 그러면 아! 대단하시네요. 마침 빈 방이 하나 있으니 거기서 편안히 쉬세요 그럴까? 호텔은커녕 신림동의 여관에서도 문전박대 당할 것 같다. 그러니 이런 저자의 무모한 도전정신이 새삼 놀라울 뿐이다. 이해의 문제가 아니라 실천의 문제인가. 놀라운 건 또 있다. 모든 문제는 사람을 통해 문제 해결한다는 규칙에 따라 필요한 돈도 창의적인 사업 아이템을 생각해 내어 충당했다. 실제로 쾰른에서의 집사, 라스베이가스에서의 인간소파, 센프란시스코에서의 베개싸움과 힐 헬퍼 등의 아이디어로 여비를 벌었다. 이런 기발한 아이디어를 생각해 낸 것도 놀랍지만 그것을 행동으로 옮긴 그 용기가 대단하고 감탄스럽다.

 

서두에서 땡전 없이 세계여행에 성공한 저자의 비결을 궁금해 했다. 결국 사람이었다. 너무 뻔한 결론이지만 또한 그게 사실이기도 하다. 국적, 인종, 종교를 떠나 사람과 교감하며 그들로부터 도움을 주고받는 것. 이것이 미하겔 비게의 방법이다. 세상은 좋은 사람도 있고 나쁜 사람도 있다. 나는 좋은 사람일까? 나쁜 사람일까? couchsuffing.com에 가입해 나도 카우치서퍼가 되어 볼까? 그래서 여행을 자주 다니지 않는 몬트리올의 라파엘레와 제시처럼 카우치서퍼들을 재워 줌으로써 각국의 여행객들을 통해 견문을 넓히는 것도 좋지 않을까! 페이스북이나 트위터에서 외국인과 온라인상으로만 소통하는 것보다 더 재미있을 것 같다. 그러나 우리 정서와 맞지 않는 점도 있다.

 

우리 정서로는 잠을 재워준다면 보통 밥까지 챙겨 주는 게 일반적인데, 외국에선 소파 빌려준다고 하면 소파만 달랑 빌려주고, 잠만 재워준다고 했으면 진짜로 밥은 안 주고 잠자리만 제공한다. 소파 빌려주는 건 고맙지만 그 선의에도 불구하고 왠지 냉정해 보인다. 손님은 소파에 재우고 주인은 편하게 밥을 먹거나 잠이 올까? 우리와 문화가 다른 것이니 나쁘다고는 할 수는 없다. 끝으로 기행문임에도 사진 한 장 안 실은 게 유감이다. 저자가 비디오 카메라를 두 대나 들고 여행을 떠난 것을 보면 자신의 여행을 방송에 담을 계획이었던 것 같은데, 이 책 어디에도 이렇게 찍은 영상을 다큐멘터리로 방영했다는 언급이 없다. 얼마 전 읽은 코너 우드먼의 '나는 세계일주로 경제를 배웠다(around the world in 80 trades)'의 경우는 영국에서 TV 다큐멘터리로 방송이 되었는데, 혹시 '땡전 한 푼 없이 떠난 세계여행'의 영상물로 나온 게 있다면 한 번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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