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동물자유연대 조희경 대표가 들려주는 인간과 동물의 공존에 관한 이야기다. 반려동물 100만 시대, 과거 어느 때보다 동물의 생명권을 존중하는 세상으로 변한 것 같지만, 우리가 모르는 동물권의 사각지대도 많고 알면서도 애써 외면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이 책에는 반려동물 100만 시대에 가려 숨어 있는 동물의 참담한 삶의 현장을 구체적인 사례를 통해 그대로 보여준다.
말 못하는 짐승이지만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의 참담하고 안타까운 사실에도 그 아픔을 공감하지 못한다면, 인간이 동물보다 우월하다는 자부심을 스스로 거두어야 할 것이다. 인간을 위해서라는 명분으로 행해지는 동물에 대한 각종 학대행위를 통해 우리의 기쁨은 누군가의 고통의 대가였음을 알게 된다면, 우리는 과연 무엇을 해야 할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이 책을 통해 찾아보려고 한다.
내가 사는 집 주위를 오고가다 보면 꼭 한 번씩은 유기견이나 유기묘를 보게 된다. 살이 통통하게 오른 도심의 비둘기에게는 동정이 가지 않지만, 먹이를 찾아 이리저리 바삐 돌아다니는 개나 고양이에게는 먹이라도 주고 싶은 마음이다. 특히나 날씨가 추워지는 겨울, 살이 빠진 그들을 보면 참 힘들게 살아간다는 생각에 작은 연민의 감정이 들기도 한다.
그런데 이 책에는 이들 유기동물보다 더 핍박받는 동물이 너무 많았다. 사육되는 닭, 돼지, 개, 너구리, 돌고래 등등 일일이 나열하기도 힘들다. 종돈 어미돼지들은 폭 60cm, 길이 210cm로 A4용지 2장의 크기의 툴에 갇혀서 몸을 움직이지도 못한 채, 공장의 금형에서 물건 찍어내듯 새끼 돼지를 생산한다. 양계장의 닭은 A4용지 크기에 2마리가 살면서 평생 계란 낳기를 강요당한다. 거의 매일 계란을 낳느라 칼슘이 빠져나가는데 운동을 할 수 없으니 골다공증으로 고생하며 다리가 점점 마비되어 밥도 못 먹는 경우도 있다. 반려동물도 사랑받는 개들의 삶도 비참하다. 개들은 생식 기능이 다할 때까지 케이지 안에서 새끼 낳는 삶을 반복한다. 태어난 지 겨우 한 달 남짓 된 어린 새끼들을 빼앗기는 고통을 참으면서 말이다.
고기를 내놓기 위한 닭의 수명은 기껏 길어야 45일, 돼지는 180일이다. 이런 비참한 삶을 살다가 죽어나가는 동물이 1년에 9억 마리이고, 전 세계적으로 700억 마리에 이른다. 한 생명체가 다른 생명체들을 이렇게 천문학적으로 죽이는 사례는 46억 년 된 지구에서 생명이 탄생된 이래 유일하다. 그 어려운 일을 인간이 해낸 것이다. 게다가 삶이 고달팠던 동물에게는 편한 죽음조차 허락되지 않는다. 인간에게 모든 것을 주고도 고통을 느끼지 않게 편한 죽음을 갖지 못한다. 심지어 모피를 얻기 위해 너구리는 산 채로 가죽이 벗겨진다.
한 번이라도 이들 동물의 눈을 본 사람이라면, 그 슬픈 표정을 평생 잊을 수 없을 것이다. 저자가 15년 동안 동물 보호를 위해 애쓴 것도 학대 현장에서, 버려진 현장에서, 동물쇼 현장에서, 실험실에서, 농장에서, 도축장에서 목격한 그 슬픈 눈빛을 잊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모든 것을 체념한 듯 죽음을 기다리는 동물의 표정은 인간의 그것과 다를 바 없다. 사람들은 동물은 아무런 감정이 없다고 생각하거나 또 그렇게 믿고 싶어 한다. 그러나 반려동물을 키워본 사람이라면 느끼지만, 동물과 인간의 교감은 너무나 자연스럽다.
어쩌면 인간보다 더 깊은 교감을 할지도 모른다. 동물에게는 배신이 없다. 그들은 버려져도 자신이 버려진 줄 모르고 하염없이 기다리는 순박한 존재다. 이런 면에서 인간보다 낫다. 희로애락의 감정은 인간의 전유물이 아니다. 그래서 동물의 고통에 대한 연민은 너무나 상식적이다. 연민은 고통 받고 힘겨운 하는 존재에 대해 자신도 모르게 저절로 일어나는 공감의 마음이다.
동물에 대한 학대의 금지는 단지 연민의 문제만은 아니라, 도덕적 철학적인 이유로도 당연하다. 어떤 존재가 고통을 느낀다면, 그와 같은 고통을 고려하지 않으려는 것은 도덕적으로 정당화될 수 없다. 공리주의자 밴담은 이익을 갖고 평등한 대우를 받을 수 있는 존재의 요건으로 쾌고능력(쾌락과 고통을 느끼는 능력)을 언급했다. 쾌고능력은 행동, 신경계의 특징, 진화적 유용성의 세 가지 측면에서 입증할 수 있고, 인간을 포함한 모든 동물은 쾌고능력이 있기 때문에, 동물 또한 인간과 마찬가지로 그에 부합하는 대우를 해줘야 하는 것이다.
무엇보다 동물의 생명을 존중해야 하는 까닭은 인간 자신을 위해서이다. 제레미 리프킨이 언급한 대로 지금까지 육식으로 인해 지구와 자연 생태계가 입은 피해는 상상을 추월할 정도다. 생태계의 파괴는 곧 인간 생존권의 파괴로 이어진다는 점에서 홀로코스트와 같은 동물 죽이기는 이제는 중단되어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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