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을 자주 찾지는 않지만 웬만한 시인의 이름 석 자나 그 대표작 정도는 안다고 자부했는데, 이 책의 저자인 류근은 처음 들어보는 시인이다. 내게는 낯선 시인이지만 가수 김광석의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의 작사가라고 하여 조금이나마 친근감을 가질 수 있었다. 그래도 어떤 사람인가 궁금하여 프로필을 확인해 보니 평범하게 살아왔던 분은 아닌 것 같다.
1992년 등단하고 첫 시집조차 내지 않다가 18년이 지난 최근에서야 첫 시집을 냈다고 한다. 또한 천재에 술주정뱅이 혹은 미치광이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상반된 소문이 남무하기도 한다. 사실 여부를 떠나서 ‘이 사람 뭐지 하는’ 호기심에 눈길이 가는 분임에는 분명하다. 그러나 시인으로서 다작이 좋은 것은 아닐지라도 20년 가까이 작품이 없었는데 시인이라고 하기에는 좀 그렇다. 그 기간 동안 공부도 하고 광고회사도 다니며 이러저런 사업도 했다고 하니, 바빠서 그럴 수 있겠다 생각은 든다. 다행히 첫 시집에 이어서 바로 첫 산문집이 나온 만큼 앞으로 활발한 작품 활동을 기대해도 되겠다.
사실 제목만 보면 저자의 사랑 이야기 혹은 사랑예찬의 내용이 아닐까 생각하게 된다. 그래서 급하게 책장을 넘겨본다. 헐~ 사랑 이야기가 아니라 술 이야기로 가득하다. 원래 제목은 ‘울면 좀 어때’였는데 바뀐 것이란다. 이 제목을 책 내용으로 사용했다면 덜 당황스러웠을 것이다.
독자들의 호기심을 자극하려 했다면 적어도 내게는 일단 출판사의 의도는 성공적이다. 제목과 다른 반전의 묘미를 보여주었으니 말이다. 요즘은 반전이 대세인가 보다. 아무튼 술과 함께 하는 시인의 하루 일상을 따라가면서 나의 하루를 되돌아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
독자마다 다르게 받아들이겠지만, 책을 읽는 내내 왜 이리 찌질하지 하는 생각이 앞섰다. 쥐뿔도 없는 나지만 뭐라도 하나 주고 싶을 만큼 말이다. 글 재주라도 없었다면 어쩔 뻔 했나? 사람들은 묻는다. 왜 술을 마시냐고. 그는 대답한다, 외로워서 만신다고. 다시 묻는다. 술 마시면 안 외로워지냐고. 그 또한 다시 대답한다. 마시면 더 외로워진다고. 그런데 그걸 알면서 왜 술을 마시냐고? 돌아갈 곳 없는 자가 돌아갈 곳은 결국 자기 자신밖에 없다. 그러면서 술은 그것을 가장 명징하게 깨닫게 해주는 도구로 쓰인다고 말한다.
말장난 같다. 저자는 건망증이 심한건가? 그렇게 마신 술만으로도 돌아갈 곳은 결국 자기 자신임을 덜 깨달았다는 것인가? 아니면 그저 유식한 사람이 술 마시는 행위를 고상하게 포장한 것인가? 왠지 자신의 술 마시는 습관을 화려한 글 솜씨로 포장한 느낌이다. 아마도 평범한 사람이 저자처럼 술독을 끼고 살았다면, 어떤 말을 들었을까? 저자와 평범한 사람 모두 술을 끼고 산다는 점에는 차이가 없는데도, 왠지 시인은 뭔가 있을 것 같고 하여 관대하게 받아들이지 않을까 싶다.
고등학교 국어 시간엔가 배웠던 것 같다. 술과 달을 친구 삼았던 시선 이태백이 예전에는 참 멋있게 보였지만, 시간이 지나갈수록 자신을 절제할 줄 모르는 사람으로 느껴진다. 마찬가지로 저자의 술 역시 그런 것 같다. 세상 고민 혼자 짊어진 것처럼 술을 끼고 사는 모습이 과히 좋아보이지는 않는다.
그는 자신의 가장 큰 지병은, 술에서 풀려나고 나면 아무도 그립지 않다는 것, 어떠한 기다림도 내 것이 아니라는 것, 아침이 재앙이라는 것, 아침부터 치욕이라고 한다. 나는 이 마음을 도통 모르겠다. 나는 술을 거의 마시지 않는다. 주량은 소주 2병쯤 되나 일 년에 몇 번 정도 마실 뿐이다. 그러니까 한 달에 한 번도 마시지 않는 편이다.
술은 마시고 한 시간 정도는 기분이 알딸딸하고 일상의 모든 시름을 이길 수 있는 용기를 준다. 그러나 딱 그때뿐이다. 오히려 술자리가 끝나고 집에 돌아와서 방 안에 홀로 있을 때 술을 먹기 전과 먹은 후 바뀐 게 전혀 없다는 무력감에 빠진다. 게다가 내일 아침이면 어김없이 찾아올 두통과 속 쓰림을 생각하면, 내일 잠이 깨기 전에 벌써부터 후회가 밀려든다. 잠에서 깨어난 아침, 어젯밤 내가 원하는 대로 바꿀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거저 나의 착각일 뿐임을 새삼 확인한다. 나는 그 시간이 두려워서 술을 마시지 않는다.
저자가 일제시대나 군사독재 시절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무능한 지식인의 고뇌를 가진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레디메이드 인생의 주인공처럼 공부해봐야 취직도 안 되는 그런 나약한 지식인도 아니다. 솔직한 느낌을 말하자면 배울 만큼 배웠고 남들 부러워할 인맥도 있으면서 왜 그렇게 궁상스럽게 살아가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그렇다고 그런 삶에 스스로 만족해 보이는 것 같지도 않다.
물론 출판사들이 대중성을 고려해 책을 기획하고 그에 맞게 내용을 편집했을 테니, 실제 저자의 삶은 그의 글을 통해 느끼는 것과는 달리 행복한 삶일지도 모르겠다. 사실 나만 잘 하면 되는데 괜히 남의 삶에 이러쿵저러쿵 하는 것도 그렇긴 하다. 사실 나 살기 바쁜데 생판 모르는 남들의 삶과 그 감정에 신경 쓸 필요도 없고, 때로는 술주정 같은 그의 넋두리와 깨알 같은 비속어와 과장과 허세의 글을 피 같은 돈을 들여서 들어줄 필요도 없다. 그 사람이 시인이든, 누구든 간에 말이다.
그런데 이 책을 읽은 후에 우연히 그의 인터뷰 기사를 보게 되었다. 그 기사를 읽은 기분을 좀 과장해서 표현하면 이렇다. 지하철역에서 노숙자에게 다가가 없는 살림에 약간의 도움을 주었는데, 알고 봤더니 재벌 회장 아들이란다. 이때만큼 자신이 주제넘은 일을 했다는 사실에 쥐구멍이라도 찾고 싶은 심정은 없을 것이다.
인터뷰 기사를 읽어 보니 실제 그의 삶은 찌질하지 않은 것 같다. 오히려 자신의 삶을 열심히 사는 사람이라고 해야겠다. 그 나이에 맞는 경제력을 가지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독자들이 생각하는 것만큼 여유가 없는 것은 아닌 것 같다. 게다가 지금 작가로서 인기가 올라가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아마도 그의 찌질함으로부터 자신의 찌질함을 위로받으려 했던 사람은 조금은 실망(?)할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그의 글은 픽션과 팩트 중 어느 쪽에 가까울까? 물론 사람들은 팩트라고 생각하여 그에게 라면이나 쌀 등을 보내주었을 것이다. 더 재미있는 것은 그는 술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숫기가 없어 술을 먹을 뿐이라면서 말이다. 이를 액면 그대로 받아들일 수는 없기에 솔직히 어느 말이 팩트인지는 헷갈린다. 원래 산문이라는 것이 픽션이 가미되는 글인가 보다. 사실 픽션이면 어떻고 팩트이면 어떨까? 그저 글을 읽고 뭔가 하나 느끼고 배우면 그것으로 족하다. 나는 평생 술을 마시지 않겠다는 다짐을 한다.
개인적으로 다음의 글이 가장 공감이 가는 대목이었고, 적지 않은 생각을 해보게 만들었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우울과 절망이 느낌이라면 그것은 곧 지나간다. 하지만 불안을, 공포를, 우울을, 절망을 깨달아버린 거라면 그것들은 절대 지나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진정한 불안과 공포, 진정한 우울과 절망은 깨달음의 세계다. 가벼운 느낌 따위로 설명할 수 있는 장르가 아니다. 한 번 깨달은 것이 무슨 수로 극복될 수 있겠는가. 극복된 깨달음은 가짜다.
이 대목에서 조금이나마 그를 이해할 수 있었다. 나야 아직은 깨달은 수준은 아니고 그저 느끼는 수준이라 감히 불안과 공포 우울, 그리고 절망에 대한 그의 깨달음을 이해할 수 없지만, 미루어 짐작하건데 태양계 밖을 벗어난 보이저 2호에 홀로 남아 있는 그런 기분 아닐까? 아니면 이 우주의 침묵이 두렵다던 파스칼의 마음과 비슷하지 않을까? 아마도 이런 상황에서 술을 찾지 않는다면 그것이 정상이 아닐지 모르겠다.
개인적으로 스스로 삼류 트로트 통속 연애 시인이라 자처하는 저자의 바람대로 카리브 해에서 낚시하며 살 수 있기를 바란다. 그의 글을 읽는데 왜 까닭 모르게 백석의 시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가 떠오를까?
"가난한 내가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 오늘밤은 푹푹 눈이 나린다....... 눈은 푹푹 나리고 아름다운 나타샤는 나를 사랑하고 어데서 흰 당나귀도 오늘밤이 좋아서 응앙응앙 울을 것이다."
'자기계발'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하루 5분 엄마의 말습관 (0) | 2023.05.27 |
---|---|
백만장자 아빠가 딸에게 보내는 편지 (0) | 2023.05.24 |
오늘 변화를 이끄는 100가지 마법 : 실수인정, 리스크 감수, 아침주문, 현실에충실, 후회하지 않기 (0) | 2023.05.22 |
주식투자 하기 전에 알았더라면 좋았을 것들, 조바심, 70:20:10 법칙 (0) | 2023.05.21 |
오래 뜨겁게 일한다 - 나는 프로답게 열정적으로 일하고 있는가 (1) | 2023.05.20 |